비정성시非情聖市

비정성시(非情聖市)*

-그대들과 나란한 무덤일 수 없으므로 여기 내 죽음의 규범을 기록해둔다

 

 

김경주

 

 

비 내리는 길 위에서 여자를 휘파람으로 불러본 적이 있는가

사람은 아무리 멋진 휘파람으로도 오지 않는 양이다 어머니를 휘파람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대대장을 휘파람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간호사를 휘파람으로 불러 세워선 안 된다 이것들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것이 내가 여기에 들어온 경위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음악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휘파람을 잘 분다 해가 뜨면 책을 덮고 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구석으로 가서 나는 암소처럼 천천히 생각의 풀을 뜯을 것이다

나는 유배되어 있다 기억으로부터 혹은 먼 미래로부터.

그러나 사람에게 유배되면 쉽게 병든다 그리고 참 아프게 죽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여기서 참으로 아프게 죽을 것이다 흉노나 스키타인이거나 마자르이거나 돌궐이거나 위구르거나 몽골이거나 투르크족처럼 그들은 모두 유목의 가문이었다 그들의 삶은 늘 유배였고 그들의 교양은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상식은 죽어가는 가축의 쓸쓸한 눈빛을 기억할 줄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벽에 많이 태어났고 새벽에 많이 죽었다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은 그때 나를 작곡한 그 남자다 그는 현세에 음악으로 환생한 것이다 까닭에 나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전생을 거듭 살고 있는 것이며 나의 현생은 전생과 같다 나는 다시 서서히 음악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간직한다

예감 또한 음악이다 자신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러나 자신과 가장 닿아 있는, 자아의 연금술이다 나는 지금 방금 내 곁을 흘러간 하나의 시간을 예감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생각은 음악이 되고 한 컵의 물이라는 음악을 마시는 동안 내 생각은 어느 먼 초원 스페인 양떼들의 털을 스친다

모든 나를 인정하는 순간이 올까? 목이 마르다고. 당신과 함께 사는 동안 여덟 번 말했다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세상이 온통 비만 온 줄 알고 죽어간다
비 오는 날 태어나자마자 하수구에 던져진 태아는 세상은 태어나자마자
하수구 속에서 죽어가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다 그의 어미는 야산의 둔덕에서 하늘을 보며 빗물로 피 묻은 자궁을 씻고 있다 해가 뜨고 개미들이 어미와 태아의 끈이었던 태를 땅속으로 끌고 간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그것들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비 온 뒤 축축한 땅에 귀를 대면 누가복음이 들려온다 개미의 저녁 예배를 듣다가 저녁을 굶었다

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그것들을 이해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살고 있는 시간은 무간(無間)이다라고 불러본다

내가 살았던 시간은 아무도 맛본 적 없는 밀주(密酒)였다 나는 그 시간의 이름으로 쉽게 취했다

유년은 생의 르네상스다 내가 이슬람교도였다면 나는 하루 여섯 번 유년이라는 메카를 향해 절을 올렸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저수지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한순간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렸다 수면으로 가라앉으면서 바라보던 물 밖의 멀어지던 빛,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학교에 가지 않고 물속에서 손바닥을 펴 죽은 새들을 건져올리며 나는 그 열락을 기억해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까지 어머니의 젖맛이 기억나지 않아 나는 새벽에 자고 있는 어머니의 가슴을 물어본 적이 있다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

모든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이 살던 시절의 공기가 고여 있다 따뜻한 말 속에 따뜻한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모든 영정 속에 흐르는 표정은 그 사람이 지금 숨쉬고 있는 공기다 영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면 내가 그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이곳을 느끼고,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쪽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정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붉은 공기가 된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사진 밖의 나를 보면 어지럽다.
시차(時差)때문이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죽음이 필요했기에 당신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으로 나는 걸어가고 있다

방 안의 촛불이 눈 속에 공기를 모두 연소하고 있다
촛불은 다른 불빛들과 이웃하지 않는다. 이것이 촛불이 밤에만 피는 까닭이다

1976~? 나와 생멸을 같이할 행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나의 에테르다

수음을 하는 동안 몇천 년 나는 늙어간다
수음을 하는 동안 나는 나라는 문명이 슬프다

너와 내가 뜨겁게 안는 순간 문득 우리가 죽는다면 몇천 년이 지나 우리는 화석이 될것이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만질 것이다 거칠고 딱딱한 질감에는 슬픔이 담기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분노다 나는 비로소 천 년이 지나 사람들이 우리를 만질 때 돌 밖으로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것은 너와 나 사이의 야만이다

기억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한 번 자살하는 것과 같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생이별하는 것이다 저승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곳의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낯선 곳에서 자는 일이란 저승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생에 다름 아니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내가 한 번 자살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바람이 한 페이지의 얼굴을 넘기며 간다 동풍은 과묵하다 불안은 자기표현의 정직한 양식이다 내가 매일 맞는 주사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

간밤에는 부대를 빠져나와 대원들과 어울려 무덤을 팠다 삽날이 두개골에 닿았을 때 나는 낙타를 떠올렸다 사막을 가다가 모래처럼 허물어졌을 낙타, 10리 밖에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 무덤에 묻혀 있던 그의 뼈를 구워 점을 쳤다 그는 은(殷)나라 사람이었다 시를 썼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절벽만을 그리는 화가였다 꿈은 어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유배지다

저 자신의 내면을 도굴하는 것이 꿈이라면 사람들은 꿈이라는 실형을 살고 있는 셈이다 위험한 짓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곳을 다녀올 때마다 다른 비석(飛石)을 세우고 온다 그리고 거기서 데려온 기억의 비문을 문득 추억이라 부른다

기억이란 인간의 두번 째 생이다 인간은 기억을 기다릴 뿐 기억을 소유할 수 없다 모든 기억은 불구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지금 분홍천(川)이다 저녁만 되면 병동의 사람들은 예배처럼 창을 열고 저 노을을 가슴에 버린다 창살을 통해 마지막일지 모를 일몰을 바라보며 쓴 사형수의 수기보다 더 아름다운 시(詩)는 아직 없다 그것은 죽어가는 자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가는 것들에게서 나오는 음악을 베토벤이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베토벤은 저 자신이 음악이었다 그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절박했을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귀신이 되는 생도 있겠으나 귀신으로 태어나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이 세상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생들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 음악을 향해 나의 원시는 바쳐진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詩)를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빛을 보아서는 안 될 운명을 가진 뱀파이어 부부가 죽기 전 스스로 햇볕 아래로 기어가 서로 끌어안고 부서진다 단 한 번 빛을 보기 위해 그토록 많은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수천 번의 밤을 경험했다
나는 밤에 태어났고(T) 밤에 자랐으며(T) 밤에 시를 썼다(T) 이 사실만으로도 지구에서는 아득할 만하다(F) A=A-

지구에서는 시인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의 별에서는 지구가 보인다

사이다에 지렁이를 한 웅큼 담그고 마셔버린 나의 이종 삼촌은 자신이 목성에서 왔다고 했다 지금도 나주 백병원에 가면 고모할머니가 가져다준 한약 봉지를 하나씩 개수구에 버리고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삼촌은 이제 마흔이 다 되어 무섭게 음식만을 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지구에 와서 배운 것이 휘파람뿐이라고 했다 전남대학교 천문학과 83학번을 수석으로 입학한 삼촌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그 삼촌과 나는 어릴 적 「로보캅 2」를 함께 보고 나란히 화장실서 로보캅처럼 오줌 누던 기억이 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마른 사타구니를 만지며 괴롭다 내게서 꿈이라는 혐의를 빼면 대체로 나는 무죄이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생이 끝장날 것 같다 “개자슥 엄마를 불러!” 면회 온 엄마를 불렀다고 고막이 터지게 맞던 나의 아름다운 후임병(99-71002665)은 누구에게나 거짓말이 늘어갔다

달뜬 밤 기숙사 창틀에 앉아 비누를 갉아 먹다가 실려온 저 대책 없이 아름다운 옆방 소녀는 밤마다 쥐가 된다 하수구에서 시궁쥐처럼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소녀에게 인공호흡하지 않았다 소녀의 흰 발목과 소녀의 살짝 드러난 하얀 허리 사이에는 시커먼 털들이 무성했다. 젖은 바지는 그 무참함을 가릴 수 없었다. 소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무성한 허벅지 털의 색감과 질감까지 포용할 수는 없었다. 소문처럼.

방이 좁아서 더 이상 양떼를 부를 수 없다 서랍과 옷장에도 양떼가 꽉 찼다 내 양들은 물갈퀴를 달았다

어느 날 망막을 마개처럼 따 올리면 수천 통의 필름이 눈 밖으로 줄줄 흘러나올 것이라 믿는다 눈 안으로 빛이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필름은 눈 속에 살아 있다 빛이 눈을 아프게 하는 건 눈은 깊고 어두운 성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는 커튼을 치지 않는다 병실은 늘 어둡다

한 번도 꽝꽝 언 하늘에 (鳶)을 날려보지 않은 사람과는 나는 놀지 않았다
찬송가를 백 곡 이상 안다고 하는 사람과는 나는 노래 부르지 않았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줄줄이 암기한다는 사람과는 돈거래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불효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릴케의 뜨거운 서시(序詩)를 앞에 놓고 자위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은 그대라는 성(城) 안으로 들어가 평생 시만 쓰며 살겠다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나는 그런 사람을 살아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칸은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 소설에 주술을 걸어 그녀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칸은 매일 비명처럼 살아갔다 우리는 절박하게 부패해가는 생의 오류만을 시라고 불렀다 칸의 파오를 찾아가지 못한 지 오래다 나는 칸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우리에게 생을 증거하는 것은 고통뿐이었지만 우리의 면죄부가 고통 그 자체일 순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우리는 근사한 기분이었다 칸과 나는 자웅동체처럼 웅크리고 자는 습관이 있다 배춧잎 같은 이불 위에서 깨어나면 그와 나는 SAM이 된다 현실은 죄지은 것도 없이 우리가 매일 써야 하는 삶의 조서다 우리는 붙어서 걸었고 매일 고개를 숙이고 조서를 썼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죄짓는 기분이다

마크툽! 기억의 피라미드여 굳건하라 어떤 나든 함부로 파들어가면 묻힐지니 기억은 다 해독하면 곧 달아나야한다 금방 돌이 떨어지고 벽이 갈라지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는 기역(氣驛)이 무섭다

바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속으로 유배된 자들이 내게 띄우는 편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는 창을 열고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 편지를 읽는다 로비에서 소녀는 달력을 보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환자복을 파고들어 배를 부풀리던 바람은 어디서 온 편지일까?

소녀는음력달이완전히찼을때어두운계단입구에서혼자아이를낳았다내가그녀쪽으로조용히걸어갔을때그녀는거의움직일수없을만큼지쳐있었다너무어두웠기때문에내가누구인지도그녀는확인할수없는상태였다한손에는태를자른과도가힘없이쥐여있었다나는그녀에게다가오는그림자였고그녀도내가보지못한그림자를가진채누워있었다아이는울지 않았다나는그아이를안고내방으로천천히걸었다그녀가손을뻗어잠깐동안무엇인가알수 없는알타이어를중얼거렸지만이윽고그녀는조용히벽에비친내그림자만만지고있었다나는그아이의몸에밴어머니의피를젖대신먹였다새벽엔가축의젖을물렸다아이의몸에선라일락향이났다사람들의눈을피하기위해나는아침에아이를머리부터천천히삼켰다가저녁이면뱉어내서다시쥐의젖을물렸다아이는내안의굴에서낮에는박쥐처럼거꾸로매달려잤고밤엔내가읽어주는나의시를들었다아이는조금씩눈이멀어갔다아이가다자랐을때나는 갈매기의혼을넣어주었고아이는말의몸을빌려달력의초원으로달려갔다아이가떠나기전 내게당신시는영하라고했다나는아이가떠난후쓸쓸해서몽골어를배워보려고했지만곧그만두었다달력에서쏟아지는눈으로방이얼었다

눈물은 자기 안의 빙하가 녹는 것이다 차가워지려면 뜨거워지는 헤엄부터 배워야 한다 뼈의 길을 찾아들어 섬광을 남기는 보검처럼. 칼은 뜨거우면서 차갑기 때문에 멀고 깊은 곳까지 흐를 수 있다 밖으로 나오는 울음은 뜨거워서 타인의 마음을 베지만 안으로 우는 울음은 자신을 베기 때문에 차갑다 눈물은 제 안의 썩고 있는 어류(魚類)들이다

하늘은 스콜라 철학처럼 흐른다 구름은 제3의 물결이다 바람은 바카디151처럼 독하다 나무들은 루마니아 전설처럼 고요하다 숲은 한물간 산부인과처럼 조용하다 안개는 논리가 없고 태양은 실천 중이고 호수는 냉소적이다 먹어야 할 알약은 베이컨적이고 경험하지 못한 진실은 아직 내 앞에 평등하고 헤겔보다 나는 기도를 잘할 수 있고 내 기도가 더 형이상학적일 수 있고 1999년 6월 진해부두에서 감전돼 죽은 이 병장보다 돌계단은 차갑다 신은 관념을 품어서는 안 되고 나는 코펜하겐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코펜하겐이라는 음악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코펜하겐이 되고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믿는다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쓰고 설명하지 않기 위해 나는 울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유산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나고 나를 제대로 발음하고 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슬픔에 부상당했고 가난에 고문받았고 종교에 암살당했고 밤마다 임 병장의 자지를 만져주며 살아남았고 대신 매일 시로 자살했고 시로 미(美)를 매혹시켰다
방에 침을 퉤퉤 뱉는 또 한 마리 모기의 목을 땄다 모기의 뇌(腦)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중국 전설을 믿고 병 속에 모아놓은 모기의 머리들을 들고 소녀의 방문 앞에 놓았다 열쇠 구멍으로 소녀가 내 뒷등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죽으면 너는 꼭 나를 해부해야 한다 내 가슴을 절개하면 누구 말대로 내 가슴에선 수억의 인류들이 피에 뜬 채 죽어 있을 것이다

죽이고 싶은 버전이 몇 있다
너무 아름다운 시를 썼기 때문에 죽이고 싶은 버전이 있고
너무 시를 아름답게 보기 때문에 죽이고 싶은 버전이 있다
굴욕을 연민하는 시인은 제 자신의 삶이 한 권의 시집이어야 하고 그 시집은 자아의 병동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버전이다

시인은 신이 놓쳐버린 포로다 그러나 포로는 늘 프로다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은 너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졌다! 라고 쓰는 것은
단지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곳에 산다
그것이 너한텐 꽤 중요한가 보다

잠자는 동안 창밖에서 수천 개의 붉은 눈알들이 나를 내려다본다는 것을 안다 손가락을 다 써버리고 잠든 밤, 내 몸을 빠져나온, ‘내가’ 배 위로 올라타서 두 눈을 뽑고 있는 것을 안다 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는 늦은 아침까지 눈을 뜨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가 다시 내 속으로 들어오고나면 나는 겨우 눈을 떠 등바닥에 시퍼런 핏물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국적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병사다 나는 7월의 클라이맥스를 안다
나는 7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7월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죽어갈 것이다 내 유서는 7월 위에 쓴 나라는 시 한 줄뿐이다 내가 죽으면 세상의 7월은 수장될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느낀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마리아 상이 눈물 흘린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차에 치인 사람이 바닥에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장례식차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고 있고
몇백 마일 떨어진 늪에서 얼룩말이 악어 입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다
몇백 마일 떨어진 전깃줄 위에 사람 하나 새들 사이에 끼여 날개에 고개를 파묻고 앉아 있고
몇백 마일 떨어진 창 속에서 누군가 탈고를 막 끝내고 숨이 멎었다
몇백 마일 떨어진 창 속에서 누군가 탈고를 막 끝내고 숨이 멎었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저승사자들이 지하철을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고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출생을 알고 찾아온 아들이 어서 돌아가기를 바라는 어미는 초조하게 거실을 서성거린다
몇백 마일 떨어진 골목의 대문 앞에서 누군가 나처럼 서성거리고
오늘, 음악은 참 희곡 같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꿈속에서 어떤 호숫가에 앉아 있었는데 저 멀리서 상여를 메고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호수의 차고 푸른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곳으로 들어가면 모두 죽을 것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안 된다고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들은 내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쳐 불렀지만 그들에게서 냄새처럼 퍼져나오는 음악이 내 목소리를 그들에게 전혀 전달해주지 못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씩 물속으로 잠겨갔다. 그러다 문득 나는 상여를 메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들 모두의 얼굴이 내 자신의 얼굴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전부 눈동자가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상여 속의 망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상여를 덮고 있는 꽃천을 헤치고 관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곳에 나의 어머니가 누워 있었다. 한 그루 나무뿌리처럼 뻣뻣하고 말이 없었다. 목이 잘린 어머니는 자신의 머리가 아닌 내 머리를 옆구리에 단정히 끼고 있었다. 나의 얼굴이 어머니의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 밖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난생처음 나는 나의 울음을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비정성시(非情聖市) :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유래된 성어로 비정하고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대만 감독 허우샤오셴이 1989년 영화(원작 소설 「非情聖市 A City of Sadness」)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짐.
파오 : 유목민들의 거주지
마크툽 :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 있는 말이다’라는 뜻의 아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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